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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유 개인전 / Hanyoo Lee Solo Exhibition


나는 누구인가? 인간의 소속 욕구는 끊임없이 자신의 정체를 확인하게 한다. 하지만 그 정체는 언제나 사회적 코드를 통해 인식될 수 있다. 결국 내가 누구이고 어디에 있는가는 사회 구성원들과의 관계 및 역할, 또한 그것의 거리로 매트릭스 상에 위치한 내 좌표를 파악할 수 있다.

하지만 좌표는 수치로 환산되어야만 인식이 가능하다. 또한 수(數)는 실존이 없는 기호에 불과하다. 우리의 정체가 기호에 불과하다면 우리의 실체는 무슨 의미를 가지는가. 과연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가상에 불과한 것인가.

이제 갓 스무살을 넘긴 작가 이한유의 작품은 역시 “나는 누구인가”라는 근원적인 철학적 질문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현대인의 세속적인 기준과는 다른 자연과의 미메시스(mimesis / 자연의 재현, 존재론적 되기)적 존재 체험을 통해 정체를 성찰한다.

나는 가만히 있는데 왜 손톱, 머리카락 같은 것들은 자라는가? 자연의 비가시적인 리듬, 또는 주기…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내외적으로 발생하는 모든 상황들은 혼란스럽다. 하지만 존재자의 행태를 끊임없이 탐구하며 그 너머의 존재를 이해해 나간다. 결국 이한유가 찾은 삶의 주체는 ‘나’이다. 이제 나의 기준에서 세상을 다시 읽어 나간다.

아담의 언어는 인간이 타락하기 이전의 근원적 언어이다. 그것은 학습하지 않아도 이 세상의 모든 생명끼리 소통이 가능했다. 이한유는 종속과목강문계와 같은 근대자연과학적 생물 분류 따위는 필요없다. 사회적 효용성과 교환가치는 보이지 않는다. 오로지 순수한 존재적 체험을 작품으로 담아낸다. 그녀가 깨달은 아담의 언어를 통해 자연을 읽어나간다. 이한유의 작품은 자연과의 대화 기록이며 미메스적 실천의 흔적이다.

한요한

니트 대표

그림은 나도 모르던 나다. 무언가를 담으려는 것이 아닌 그냥 내가 지내는 것, 내가 몰랐던 무의식…

내 손톱은 '자라게 해야지!' 생각도 안 했는데 그냥 자란다. 내 기억들, 생각, 감정…그냥 내가 살아가는 것이 그림이 된다.

분리된 것이 아니라 머리카락, 손톱, 백혈구, 발가락처럼… 파동과 거미줄과 이슬 방울은 그냥 살아가는 것, 나로 살아가는 것. 살면서 쌓이며 뚝뚝 떨어지는 게 나를 울린다.

이 세상 모든 건 한뭉치 실이다. 실을 뚝뚝 떼서 뚝뚝 떨어진 실이 저마다 파동을 일으키며 여기에 왔고, 살게 됐다. 한 올 한 올. 주기가 있다. 한꺼번에 심어진 게 아니라 한 올 심고 한 올 심고 그래서 주기가 있다. 그 주기에 모든 게 생겨난다. 원들 사이에도 주기가 있다. 그 사이에 모든 게 쌓인다.

너와 나 사이에 있었던 일, 나와 나 사이에 있었던 일, 우리가 주고 받은 모든 것들, 그건 다 어디로 갈까. 분명 어딘가에 쌓이고 있다.

거미줄, 잘 보이지 않지만 자꾸 쌓여서 점점 하얘지는…감정, 생각, 느낌, 그런 것들…자꾸 거미줄이 쳐지고 하얘진다. 그리고 거기에는 이슬방울, 있었던 일, 기억, 모두 이슬방울이 되어 도롱도롱 달린다. 그리고 또록 굴러 합쳐진다. 무거워진 이슬방울은 뚝 떨어져서 또 다른 파동을 만든다.

나를 움직이는 건 모두 나다. 내가 나를 울게 하고 내가 나를 웃게 하고 사랑한다는 건 나를 느낀 것이다.

우리가 여기에 떨어졌을 때 생긴 파동이 지나간 자리를 우리는 살아간다. 나무가 원들을 만나서 몸 속에 새기는 것처럼 우리는 원을 만나며 살아가고 원은 나를 울린다. 나를 만나게 한다. 원들은 모두 나다.

작가

이한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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